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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힘을 전하는 정통 연극의 향수, "으르렁대는 ..
문화

텍스트의 힘을 전하는 정통 연극의 향수, "으르렁대는 은하수"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21/07/07 01:49 수정 2021.07.08 14:15
또다시, 우주선 하나가 날아와 무대 위에 착륙한다
"으르렁대는 은하수" CAST /(사진=Aejin Kwoun)
"으르렁대는 은하수" CAST_천성대, 김성각, 이재영, 최광석, 김예림, 김시유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텍스트가 점점 필요 없는 ‘제로 텍스트’의 시대에서 텍스트의 대립을 통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무대를 꾸민 연극 “으르렁대는 은하수”는 자신들의 방법을 통해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또다시, 우주선 하나를 무대 위에 착륙시키며 현대 관객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과거의 정통 연극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아쉬운 막을 내렸다.

암에 걸린 아이, 미래에서 온 노여 /(=Aejin Kwoun)
암에 걸린 11세 소녀의 몸에 갇힌 채로 미래에서 온 노여운 박본(천성대) | 이 연극의 작가인 박본이 열한 살짜리 여자아이의 몸에 갇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서 온다. 그는 지구인들에게 뭔가 제대로 해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사진=Aejin Kwoun)

창작집단 꼴의 대표이자 작품을 연출한 손현규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는 텍스트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싶었다. 극의 절정에 도달할수록 파국으로 치닫는 각 장면의 텍스트를 통해, 관객들의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오브제가 되었으면 한다.”는 연출 의도를 전하였다.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우두머리 김정은(김시유) /(사진=Aejin Kwoun)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우두머리 김정은(김시유) |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의 머리 위에서 은하수가 으르렁댄다. 그런 그에게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다. 바로, 남북한을 통일하자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그는 리모컨의 빨간 단추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통일 아니면 꽝!'이라고 위협하는 수밖에 없다. /(사진=Aejin Kwoun)

조금은 황당한 유토피아와 기괴한 디스토피아 사이에 존재하는 변함없는 편견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하는 박본 작가는 1987년 독일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작품마다 본인을 풍자한 캐릭터가 등장시키며 풍자를 즐기는 박본 작가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회담 이전인 2017년, 한반도 통일을 이야기하는 김정은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허구적인 연설을 담은 작품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유럽에서 권위가 높은 상으로 여겨지는 독일 베를린 연극제에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정신 차린, 전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이재영) /(사진=Aejin Kwoun)
정신 차린, 전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이재영) | 환상을 잃어버린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때문에, 울보가 되었고, 자해 중독자다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울고 피를 흘릴 때마다 돈이 불어난다. 그런 그는 마침내 좋은 일을 하고자 이 돈으로 세상의 모든 무기를 매입한다. /(사진=Aejin Kwoun)

그의 또 다른 작품 '사랑II LIEVEII'는 지난 23일부터 7월 18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이고 있어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연이어 만나 볼 수 있다. 

침착한 기린이자 안내원(김성각) /(사진=Aejin Kwoun)
침착한 기린이자 안내원(김성각) | 세상에서 가장 길고, 가장 평화로운 동물인 기린이 등장해 지구인들에게 서로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사진=Aejin Kwoun)

2020년 서울미래연극제에서 초연되었던 작품은 지난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펼쳐진 이번 재연에서는 연설가들을 변형시켰다. 지구인들에게 경고하는 외계인과 소원을 비는 암에 걸린 아이 역할까지 미래에서 온 노여운 박본이 말을 하게 하여 작품 속에서 전지전능한 창조된 인물로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제외된 카산드라와 노이어의 연설은 다음에 다시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된다면 두 인물의 텍스트로만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모습을 찾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하였다.

변명이 필요없는 그러나 인식에 찬, 소심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최광석) /(사진=Aejin Kwoun)
변명이 필요없는 그러나 인식에 찬, 소심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최광석) | 모든 것을 엄청난 식욕으로 먹어치울 수 있는 뼈다귀 물고기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사진=Aejin Kwoun)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는 현대 연극 추세 속에서, 이번 작품은 오롯이 연설가들의 꽉 찬 텍스트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콜로세움 형식으로 관객들을 둘러앉혀 배우들은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추며 말을 전달한다. 그러한 형식의 극에서 연출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호흡을 여섯 명의 배우들의 개성을 각각 살리고자 하였다.

사회민주당을 구하려는 분노에 찬 여인, 총리 후보(김예림) /(사진=Aejin Kwoun)
사회민주당을 구하려는 분노에 찬 여인, 총리 후보(김예림) | 사회민주당을 구하려는 분노에 찬 여인은 형편없는 사회구조 때문에 힘겨워 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 정치는 포기하고 선거운동만 하겠다고 선언한다. /(사진=Aejin Kwoun)

한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과 보폭을 조절하는 것은 연출에서 또 다른 부분일는지 모른다. 보폭은 같지 않아도 좋다, 일치된 보폭을 선택할지, 부조화된 보폭 속에 조화를 꾀할지는 그 또한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관객의 기준이 통일될 수 있도록 각자 부족한 지점은 배우로서 갖춰달라고 부탁하며 무대를 이끌어가는 창작집단 꼴의 공연세계는 억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배우들의 연기를 하향 평준화시키지는 않는다. 조금은 대사가 들리지 않더라도, 조금은 너무 들뜬 듯해도 무대 위에서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다음 무대에서의 발전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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