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수용자의 자녀’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신은 무슨 생각부터 떠오를까? 우리에게 어쩌면 익숙하지 않고 감춰져 왔던 그 존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연극이 우리 앞에 찾아왔다. 지난 7월 1일부터 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DOOSAN ART LAB Theatre 2021’ 프로그램의 마지막 작품으로 찾아온 “카르타고”는 영국에서 12년간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작가 크리스 톰슨(Chris Thompson)이 실제로 겪었던 보육중인 아동을 보호하도록 설계한 시스템의 고질적인 병폐와 복잡하게 꼬인 구조적, 제도적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을 관객들에게 꺼내 보인 첫 번째 글쓰기 시도였다.
사회적인 이슈와 사회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는 극단 비밀기지의 신진호 연출은 “토미와 애니의 문제는 우리 사회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어지러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들추어내고,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지 되묻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연극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라고 전하였다.
페니키아어 ‘카르트 하다쉬트’를 고대 그리스어로 음역한 단어를 다시 라틴어로 옮겨 ‘새로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카르타고”는 많은 작가들이 무시무시한 영아 희생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카르타고인은 제물을 불에 태워 바치는 번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자신의 아이를 기꺼이 제물로 바쳤다는 인신 공양 내용을 담은 전설이 고대 극동, 이집트, 그리스, 유럽, 동양의 민족과 종교 전설 속에 남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인신 공양의 신으로 유명한 몰렉신상의 몸 가운데 아궁이를 빨갛게 달구워 놓은 상태에서 갓난아기를 달궈진 몰렉신상의 손 위에 올려놓으면 아기는 타 죽으면서 굴러떨어져 아궁이로 들어가고 이때 아기의 비명과 부모의 울부짖는 소리를 지우기 위해 엄청나게 큰 북을 두드렸다. 이 풍습은 고대 로마인들이 카르타고의 멸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급하는 소재이기도 하여 사실여부는 불확실하다.
솔직함과 좌절로 뒤범벅된 작품 “카르타고”의 토미 앤더슨은 감옥에서 수용자의 자녀로 태어났고 여러 사람의 보호관찰 속에 자랐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2014년 영국에는 수용자 자녀 지원 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있어 필수적인 자금 지원을 위한 주된 법적 조항이 없었다.
사회유대이론 연구자 트래비스 허시(Travis Warner Hirschi)는 “비행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유대가 약하거나 깨졌을 때 일어난다”라고 제시하였으며, 애착을 “타인에 대한 애정과 심성으로 이러한 애착은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시키는데 필수적인 기본 요소이다”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부모의 구금은 자녀와 부모와의 ‘애착’을 약화시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수용자 자녀는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다른 아동에 비해 3배나 더 높게 발생하고 있다.
낙인이 찍혀진 아이는 낙인이 찍힌 이들과 닮으며 자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자라고 느껴지는 어렸을 때의 온 세상이 실은 작은 우물이라는 것은, 어렸을 때는 그저 온 세상이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당연하게 인식하는 낙인은 차라리 낙인에 찍힌 이들처럼 행동하고 받아들이는 게 가장 수긍하는 편한 방법일 뿐이다. ‘작심삼일’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이건만, 낙인이 찍혀진 이들의 행동이나 말의 ‘작심삼일’은 일상이 아니라 낙인의 겹쳐짐일 뿐이다.
실제 수용자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의 길을 밟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직면한 역경은 그들의 선택의 폭에 한계를 짓고 있었으며 결국 그들도 학교를 그만두고 비행, 범죄, 마약에 연루되어 대를 잇는 범죄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이는 지난 몇 년간의 수입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지원은 부모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미성년자 자녀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기에 가정의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수용자의 자녀를 지원하는 소수의 단체는 피해자들의 자녀를 우선해서 도와야 한다는 사회의 편견에 부딪히고 있다.
영국의 교도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토미의 죽음은 실상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었던 만큼, 그들의 사회적 소외에 대한 책임은 부모만의 책임일 수 없을 것이다. 수용자 부모를 둔 어린아이들과 그들을 보호하게 된 이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설명한 미국 PBS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가 운영하는 인형극 사이트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의 변화를 던져 줄 듯하다.
“저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공연으로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전하는 ‘예술적으로 세계를 탐험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는 우리에게 “보살핌이란 장소가 아닌 ‘법적 상태’이며 그 안에서 보살핌의 질은 크게 달라진다”라고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하늘 아래 모든 아이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법적 상태’를 만드는 일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할 우리의 의무라 여겨진다.
두산아트랩 공연은 만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발표장소, 무대기술, 부대장비, 연습실 및 제작비를 지원하며 매년 정기 공모를 통해 서류 심사 및 개별 인터뷰로 선정하고 있다.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힘들어진 극단 및 관객들을 위해 무료로 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