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셰익스피어의 후기작으로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지조차 의문을 품고 있기에 유명세는 조금 약한 비극으로 회자하고 있는, 정치의 이면을 재치있게 풍자한 작품 “코리올라누스”가 15세기 남짓의 시간을 넘어 대한민국에 찾아왔다.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고 있는 연극 “코리올라누스”의 남윤호 배우는 흡사 희곡 속의 인물이 살아 돌아온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20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까지 뛰어넘어 다양한 관객들에게 “코리올라누스”의 귀환을 환영하는 찾사를 받았다.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한 양정웅 연출은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고 국가와 이념, 빈부격차, 젠더 갈등으로 몸서리치고 있다. 조심스럽게 코리올라누스를 통해 인간의 고립과 갈등, 대립이라는 비극의 거울을 마주한다. 외람되이 여러 질문을 던져 본다. 조심스럽게 혼란을 경험해 본다. 그리고 평화를 꿈꿔본다”라고 관객들에게 전하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코리올라누스”는 혈혈단신으로 도시를 함락시켜 로마를 구한 장군 코리올라누스가 최고 권력인 집정관 자리에 오르지만, 그를 시기한 음모와 민중의 외면으로 로마에서 추방당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용맹하고 애국심이 투철한 엘리트이지만 오만함과 시민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인해 몰락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T.S.엘리엇은 “아마 ‘햄릿’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 작품이 말초적으로 흥미롭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 여기지,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말초적으로 흥미롭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말하면 문학계의 ‘모나리자’와도 같다”라고 이야기하며 “코리올라누스”를 셰익스피어 비극의 집대성으로 평가하였으며, 버나드 쇼는 “셰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희극”이라고 정반대의 묘사를 한 바 있다.
이 작품은 방대한 내용 때문에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와 NT Live로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초연작으로 만나보는 이번 작품은 성벽 밖에서는 외적이 위협하고 안으로는 민주주의가 태동하던 격동의 5세기경 로마 시대에 현대적 색채를 입혀 동시대의 이야기로 펼쳐낸다. 차가운 흑백의 지하 벙커 무대는 때로는 총과 칼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고, 때로는 무기보다 무서운 음모와 선전이 난무하는 의회와 토론장이 된다. 각자의 입장과 욕망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셰익스피어가 400년 전에 쓴 이야기가 여전히 현대에도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희곡의 플롯과는 달리 순차적으로 논리적인 구조 속에서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한길만을 고집하는 주인공 ‘코리올라누스’의 타협하지 못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답답하게 비칠는지 모른다. 그리고 귀족만이 아니라 민중들의 대표로 선출된 호민관들마저 지금 정치가들의 행보와 그리 다르지 않게 보일 뿐 아니라, 민중들은 정치적인 책략에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습 또한 거짓 뉴스에 쉬이 비틀거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코리올라누스는 일반 평민계급인 민중뿐 아니라 여타 귀족들과도 쉽게 타협하지 못한다. 국가의 존망에 대한 우려와 대중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뿐 아니라 귀족들의 표리부동함에도 불신하는 그의 모습은 귀족 정신이나 선민의식과 결을 같이 하는 듯하지만 유토피즘에도 가까운 듯하다. 그렇기에 그에게 조국인 로마를 떠나 볼스키를 선택하는 행보는 그저 그가 원하는 이상향을 만들 ‘장소’ 이상은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 감동을 자아내는 눈물로 로마를 택하는 그의 모습 또한 가족과 조국을 택했다기보다는 스스로의 이상적 가치를 택한 것으로 느껴진다.
타협하지 않는 주인공 ‘코리올라누스’에게 공감한 관객들도 있을 것이고,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의 고집스러움이 선민의식이나 유토피즘이든 군인으로 겪은 PTSD이든 어떤 면에서 거부감도 느낄 수 있겠지만, 그의 모습과 무대 위 다른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과연 우리는 이스라엘의 ‘발라간’처럼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지 않고 변화를 수용할 여유가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400년 전에 쓰인 희곡을 각색이나 덜어냄 없이 원작을 최대한 충실히 고집스레 살려냄과 동시에 동시대성을 보여주며 열흘 남짓 서울에서 초연으로 펼쳐진 작품 “코리올라누스”는 오는 8월 20일부터 21일까지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다시 한번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국내에서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던 LG아트센터는 “코리올라누스” 작품을 마지막으로 일산 마곡에서 새로운 시대를 펼쳐나간다. 내년 즈음 새롭게 만나볼 LG아트센터는 어떤 무대와 작품으로 관객들과 새로이 만나게 될지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