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어린이와 어른을 합친 신조어 ‘어른이’는 몸은 어른인데 정신과 마음은 아이인 상태를 이른다. 이들은 외부적인 요소로 인해 과거에 비해 자아가 늦게 형성되는 성인 또는 사회나 환경으로부터 트라우마를 겪고 자기 방어기제에 따른 타의적 형태와 어린 시절의 취미를 그래도 유지하거나 회귀하며 사회의 때에 덜 묻고 싶어 하는 의지의 표현인 자의적 형태로 크게 나누어 본다면, 타의적 형태의 어른이들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이태원 복합문화공간 베톤부르트에서 관객들과 만난 황이선 작연출의 신작 “차마, 차가워질 수 없는 온도”는 폭력과 무관심 속에 ‘어른이’로 자란 4명의 이야기를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펼쳐낸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온전히 관계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는 너무나 높은 산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나이가 돼서 알게 된 부모의 나이를 지닌 어른들은 그저 모두가 인생의 답을 찾고 있는 미완성일 뿐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부모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 중 하나라 여기거나, 사회에서 겪은 울분을 토해낼 분출구로 여기는 미성숙한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스스로의 삶에서 행복하기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 성숙했던 부모들조차 코로나19로 급변한 사회 속에서 본인들의 피로감도 쉽게 풀 수 없기에 아이들은 더욱 쉽게 궁지에 몰리고 있다.
미국 듀크대학교 임상심리학 제이드 우(Jade Wu) 연구진은 이론상 알려진 외상 증후군 환자보다 오히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빈센트 펠리티 박사와 로버트 안다 박사 연구팀은 아동기 트라우마가 신경계, 호르몬계, 면역계에 영향을 준다고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암, 심장질환, 뇌졸중 등의 질병에 걸릴 확률이 최소 2배 이상 높으며, 기대수명이 20년 이상 짧다고 보고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인 네이딘 버크 해리스(Nadine Burke Harris)는 그의 저서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에서 “아이들은 반복적인 스트레스 반응에 특히 민감하다. 고강도의 역경은 뇌의 구조와 기능만이 아니라 아직 발달 중인 면역계와 호르몬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DNA를 읽고 전사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일단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조절 장애 패턴으로 배선되고 나면 그 생물학적 영향은 점점 퍼져나가 신체 내부 기관들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신체는 커다랗고 섬세한 스위스 시계와 같아서 면역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심혈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깊이 연관된다”라며 어릴 적 폭력과 무관심에 방치된 어린아이들의 스트레스에 집중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것 뿐 아니라,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진 어른들 또한 든든한 보살핌과 지원책이 강구되어야만 한다. 정신과라는 곳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이 몸이 아플 때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해져야 한다.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이들의 몸만 치료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경중에서 하위에 있었기에 살아남은 어른이 된 아이들을 무대에서 만나는 작품 "차마, 차가워질 수 없는 온도"는 생존한 아이들이 겪는 문제가 결국 사회문제임을 재조명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 끈질기게 이뤄진 연구와 조사들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위험한 상황 속에 놓인 아이들이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타의적으로 어린이로 자란 어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봐야만 한다. 그래야만 생명을 잃거나 죽음의 위기에 몰린 아이들을 비롯하여 사회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어른이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