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조지 오웰의 실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대표적인 정치풍자소설이다. 2021 산울림 고전극장을 준비하며 수많은 영미고전 중 ‘동물농장’을 선택한 극단 동네풍경은 이 작품을 무대에 선보이기 위한 과정을 온전히 그 질문과 함께하고자 목이 쉬도록 무대 위에서 목청 높여 우리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쳐냈다.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정치 권력의 부패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가?’, ‘깨어있는 대중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라고 국가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묵직하게 던져지는 질문으로 가득 찬 작품 “동물농장”은 관객과 함께 이 이야기의 결말을 맞이하는 순간, 물음표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메이저 영감이 매너농장의 동물들을 각성시키며 동물들에게 알려주는 노래 ‘인터내셔널가’는 원곡의 강하고 투박한 느낌보다 더 웅장하면서 듣기 편하도록 김진희 작곡가의 편곡을 거쳤다. 1800년대 후반 프랑스 철도노동자 외젠 포티에(Eugène Pottier)가 작사하고, 가구세공인 피에르 드게테르(Pierre De Geyter)가 작곡한 이 노래는 공산당 선언에 버금가는 중요한 상징적인 사회주의 계열 이념의 주제곡으로, 극단적 반공을 국시로 하던 한국 사정상 민주화가 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매우 생소하다. 21세기 들어서 대규모로 조직된 반세계화, 반전 시위, 세계사회포럼, 아탁(ATTAC) 등을 통해 다시금 거세게 부활하고 있다.
인간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혁명을 이루어낸 매너농장의 동물들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구호 아래 동물들의 이상 사회를 이룩한 동물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며 부르는 노래와 자신들을 두뇌 노동자라고 일컫는 돼지들의 지배가 본격화되면서 고통에 차 부르는 노래는 같은 노래이지만 다른 분위기와 느낌으로 같은 노래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김규남 연출이 작사하고 김진희 작곡가의 작곡을 거친 두 곡은 일종의 노동요이자 투쟁가로 다가온다.
이번 작품은 중반 즈음부터 긴장의 끈은 놓인 적 없이 점점 더 당겨짐을 계속한다. 계속 가파른 길을 너무나 힘겹게 올라가는 느낌을 안겨준 작품 “동물농장”을 각색하고 연출한 김규남 작 연출은 “극의 결말 부분으로 치달아갈수록 혁명의 빛은 사라지고 공포정치와 선동,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조지 오웰의 원작 소설처럼, 연극 ‘동물농장’ 역시 지금 이 시대를 향한 경고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배우들과 함께 고민하며 장면을 구성했다. 이 동물들의 우화극을 보며 답답하고 끔찍하고 불편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돼지들이 지배하는 ‘동물농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미 체감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끊어질 듯한 긴장의 끈을 계속 조였던 이유를 이야기하였다.
스탈린 혁명과 소비에트 체제의 모순을 풍자하고 있지만, 작품 속 끔찍한 세계는 지금도 여전하다.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세상, 불평등이 평등이 된 세상, 차별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 힘을 가진 자들이 본인들만의 기준으로 자격을 나누고 자격이 없다면 그 누구도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으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원작을 읽으며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는 김규남 연출은 “우리를 진정 구원하는 것은 스스로 각성하여 질문하는 용기를 되찾는 것이다”라며 공연장 나선 관객들에게 사유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 한 사회의 계급과 계층을 이루는 각 구성원에게 그 정의란 어떻게 어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농장의 모든 동물은 하루하루의 치열한 삶에 질문을 던지지만 언제나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가로막힌다. '그 때, 우유를 맛보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라는 돼지들의 대사는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일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풍차는 우리를 구원해 주지 못한다. 또한 복서 같은 영웅도 결국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결국, 마주하게 되는 그에 대한 답은 누군가의 말처럼 “모두가 평등하다 더욱 평등한 ‘누군가’가 존재한다”일 뿐이다.
무대 위의 언어로 시대를 담아내고 있는 극단 동네풍경은 많은 예술작품을 통한 이해와 소통, 공감과 위로를 마땅히 가져야 할 예술집단의 방향성이라 여기며 사람의 이야기, 사람의 냄새가 나는 곳곳에 시선을 던지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 우리가 딛고 있는 터전과 그 안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구성원들, 당신과 나의 이야기, 나아가 우리의 역사까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는 극단 동네풍경은 8월에는 ‘인천 15분 연극제’, 소극장혜화당 ‘미스터리 스릴러전-독살식구’, 10월에는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청소년극 ‘별 볼 일 없는 세계’와 안산문화재단 전문예술 쇼케이스에 선정되어 만들고 있는 ‘선감학원’을 소재로 한 연극 ‘술래잡기’가 예정되어 있다. 그들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모든 작품이 사라지는 일 없이 온전히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2021 산울림 고전극장’은 6월 23일부터 8월 29일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 고전문학을 바탕으로 한 5 작품을 통해 고전의 ‘여성성’을 재조명하는 기회와 더불어 관객과 함께 예술적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이번 축제는 무대 위에서의 공연뿐 아니라 시각예술과 협업하여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는 2개의 전시회를 마련하여 새로운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매 공연 연출진과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각 극단의 첫 시작 주 토요일에 진행하고 있다. ‘산울림 고전극장’은 2013년부터 시작되어 작년까지 총 40개의 작품이 공연되었으며, 문학과 연극의 만남으로 한국연극의 수준을 한껏 높이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