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연극은 즐거움과 감동 외에도 자신과 자신이 사는 세상을 조명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문학가이자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작품 “하멜린(Hamelin)”이 극단 비행술의 깊이 있는 무대로 관객들의 철학적 즐거움과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수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스페인의 마드리드의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수학처럼 정확한 극 언어를 추구한다. 위대한 작가들은 사고에 몸을 입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은 담담하게 어른들의 무지와 탐욕과 오만과 착각을 몸서리치도록 구체화한다.
지난 24일 한양레퍼토리 소극장에서 단 하루 동안이나마 관객들과 함께한 작품 “하멜린”은 지난 23일부터 8월 7일까지 밀양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던 ‘제21회 밀양공연예술축제’ 참가작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축제가 취소되고, 차세대연출가전은 영상 제출 심사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차세대연출가전 참여작이었던 작품 “하멜린”은 공연영상 촬영을 위해 공연장을 빌려 촬영만 하는 것에 많은 아쉬움을 느껴 전석무료, 후불제로 관객들과 작은 호흡이라도 함께 하고자 하였다.
199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발 지구에서 부모가 돈을 받고 자녀 성추행과 음란물 제작 사실을 묵과했던 실제 사건과 그림형제의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1284년 독일 하멜른에서 130명의 어린이가 한꺼번에 실종되었다는 전설을 모티브로 한 작품 “하멜린(독일 하멜른의 스페인식 발음)”은 눈부시게 발전한 도시에서 벌어진 아동 성추행 사건을 통해 사회의 번영 아래 외면당했던 추악한 이기심이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쥐 보다도 더 쥐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소중하다 말하면서도 자신만의 정당성으로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거울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가난한 희곡이라고도 불리는 작품 “하멜린”은 연극적 상상을 위한 무대 장치를 지문을 연기하는 해설자로 대신한다. 그러기에 무대 위 배우들은 오롯이 그들의 연기만으로 관객들을 무대 위 사건 속으로 함께하도록 만든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어떤 이의 말이 진실인지 점점 더 알 수 없는 대사의 마법을 보여준 이 작품의 모든 배역은 오디션 없이 연출과의 개인적인 소통으로 이루어졌다. 등장인물의 행동, 생각, 때로는 심리까지 설명하는 해설자는 관객들을 객관적인 관찰자로 만들려는 의도라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관찰자의 위치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왜곡’을 배제한 작품이지만, 오히려 극을 관찰하는 관객들의 생각에 투영될 때 그 깊이와 흐릿한 정도에 따라 투영되는 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여전히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아동학대 같은 짐승만도 못한 범죄의 뉴스를 보다 보면 최고의 지성이라 일컫는 인류는 무엇을 위해 발전해 왔는지 반문하게 된다는 김지은 연출은 '인간의 지성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공유한다. 생활을 위해 모른 채 자식을 방치하며 부양능력도 없으면서 계속해서 또 다른 아이를 임신 중인 호세마리의 부모는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는 영화 '가버나움'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애정이나 관심보다는 직업적인 태도만으로 아이를 대하며 아픈 맘을 보듬어 줄 생각이 없는 듯한 아동심리상담사의 모습과 진실을 보도한다 자신을 포장하며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까지 모두가 '가해자'가 아니라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태도와 욕심에 희생된 것이다.
밀양에서의 공연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축제가 취소된 상황에서, 차세대연출가전과 대학극전만은 영상심사로 진행되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참가자뿐 아니라 운영관계자들 또한 혼란스러웠을 상황에서 공연과 축제를 위해 불안한 상황에서 힘겹게 준비를 한 그간의 노력이 어떤 방법으로든 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저 무대에 올릴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씁쓸하게 이야기하는 김지은 연출은 자신이 펼치려던 무대에서의 이야기가 영상을 통해서는 현장감을 온전히 전하지 못할지언정 배우와 스태프들의 노력이 수포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 이야기하였다. 비대면 공연이 코로나 시대에 공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자리 잡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극단 비행술은 평범한 삶의 단면들을 연극적 상상을 통해 낯설게 바라보고 그 안에 숨어있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창작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이다. 2017년도까지는 창작극 위주의 활동이 주를 이루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원작과 작품으로 그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 ‘하다 만 말(윤성희 원작, 김지은 각본/연출)’, ‘우주의 밖(임은재 작, 김지은 연출)’, ‘안개여관(김지은 작/연출)’ 등의 작품을 올렸던 극단 비행술은 9월에 ‘10분 난장’이라는 프로젝트에 참가해 26명의 연출가와 함께 릴레이 단막 공연에 참여한다. 그리고 12월에는 극단 종이로만든배, 두줄프로젝트와 함께 “사소한 것들”이라는 작품을 올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