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2019년 아르코 창작아카데미에 선정되어 2020년 1월 ‘차세대열전 2019!’ 프로그램으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희곡에 있는 지문까지 읽어가며 희곡 자체의 말들에 집중했던 작품 “환상회향”이 올해는 ‘놀이’에 집중하며 관객들 앞에 다시 찾아왔다. 식민상황이라는 특수한 맥락 아래 놓여있는 신지식인들이 예술과 정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정치와 경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외면하며 수동적인 존재로 자처하는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조선예술의 독자성을 ‘비애의 미’로 명명했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 예술론은 그간 많은 논의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 이름 유종열을 가진 그는 일제가 광화문을 파괴하는 데 맞서며 조선인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신문 기고문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석굴암에 관한 연구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지난 15일부터 25일까지 여행자극장에서 선보인 극단 코너스톤의 “환상회향”은 일본의 미학자이자 민예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의 서사를 뒤쫓고 있다.
제13회 대산 대학문학상 희곡부문을 수상한 고정민 작가는 이번 작품 “환상회향”에서 격동과 혼란의 시대 우리 문화재를 둘러싼 수집가들의 대결과 갈등을 통해 이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되찾아야 할 지점은 어디인지 질문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 ‘문화재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소유와 점유, 집착이라는 인간의 원형적 성격과 이면의 모습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경계는 무엇인지 고민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1920년대 전쟁과 소멸이 횡행하는 무분별한 시대 속에서 조선 문화재들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 야나기와 친구들은 서로가 힘을 모아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우며 그들은 민족과 국가,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은 예술의 위대함과 소통의 힘을 발견한다. 하지만 점차 쌓여가는 의심 속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과 국가 사이에 멈추어, 자신들이 살아가는 진짜 현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독특한 색채로 무대 위에 신명 나는 판을 벌이며 관객들과 소통을 계속하고 있는 이철희 연출은 “순수의 시대에 아름다웠던 관계가 파괴되고, 비극적 역사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예술과 정치와의 관계를 통해 오늘의 예술과 정치에 대해 생각해보며 또한 삶의 허무를 통해 오늘 내 인생의 가치를 되짚어 보기를 희망한다”라고 이야기하며, 야나기의 역사적 공과 사에 대한 논란은 슬며시 지나치며 관객들에게 판단을 맡긴다. 그의 머릿속 야나기라는 인물은 ‘한일간의 정치적 관계를 넘어 인간의 보편성을 띠고 있는 보통의 인간’ 한 명일 뿐일는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전개가 두드러진 이번 작품은 텅 빈 무대에 배우들의 등퇴장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 시작 전, 관객들에게 맘껏 배우들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무대가 ‘놀이터’가 된다는 연출의 의도는 오랜 기간 그와 함께 작품활동을 해 온 극단 코너스톤의 단원들과 더불어 이철희 배우이자 연출과 손발을 맞추던 배우들이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한 호흡으로 암울했던 시대에서 자신들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다양한 소품들과 함께 하는 진지하기 그지 없는 연기로 관객들이 시원한 웃음을 짓게 했다.
쉽게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하기 어려운 조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과 이질성을 무시하고 낙후와 미개의 표본으로 조선의 문화를 깎아내리던 일본의 식민주의 아래 놓였던 그들과 자유경제주의라는 체제 아래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정치공작에 쉽게 놀아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의도적인 침묵이나 자의적인 타협이 지금 시대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일까?
극 중 유명한 성악가이자 야나기의 아내인 가네코가 부르는 오페라 ‘미뇽(Mignon)’의 여주인공의 노래를 들으며 국악보다 좋다고 하는 개인적 감상은 ‘애국’의 반대일까? 야나기의 예술지상주의적 세계관을 이루기 위한 행보 속에서 우리의 문화재를 다시 돌려준다던 그의 약속은 그저 공염불이었을까? ‘따뜻한 남쪽 나라’는 내 마음속 세계일 뿐 타인에게 ‘차디찬 북쪽 나라’일 수도 있다 이야기하는 이철희 연출의 마음속 세계는 어떤 세계일지 여전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