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각종 문제는 너무나 많고 많다. 그중 학교폭력, 작품표절, 성추행 등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모순과 비밀을 모아놓은 미로 같은 문제들은 뉴스의 사회면에서 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짓누르는 느낌을 안겨주기에, 이러한 사건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임이 틀림없다. 김이율 작가와 극단 작은신화가 만난 작품 “믿을지 모르겠지만”은 정체성에 관한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쎈 이야기임에도 관객들에게 이유 있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5일까지 스튜디오76에서 ‘스튜디오76愛서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작품 “믿을지 모르겠지만”은 7개의 각기 다른 모노드라마로 구성되어 배우들의 극도로 정제된 연기와 최대한의 역량으로 무대 위에서 ‘진짜와 나 사이에 내 존재의 정체성’을 관객들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직장 생활과 작가 생활을 병행하며 꾸준히 글쓰기를 해 오고 있는 김이율 작가와 1986년 창단 이후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극단 작은신화에서 열네 번째를 맞이한 ‘우리연극만들기’가 만난 이번 작품을 다른 호흡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과 무대를 보여주며 최고의 연극 한 편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블루웨이 출판사 대표, 책쓰기 코치 등으로 활동하며 50여 권의 동화와 에세이를 펴내며 작가로 쉼 없는 시간을 보내온 김이율 작가는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본공모전 수상 이후 6년 만에 장막극으로 대학로에 돌아왔다.
김이율 작가는 “2000년 신춘문예 희곡 등단 이후, 직장 생활과 에세이 작가 활동을 하다 보니 연극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20년 만에 희곡 작품을 들고 대학로에 나왔습니다”라며, “극단 작은신화와 인연이 되어 한 달여 기간 동안 함께 했는데, 매 순간 작은신화의 저력을 느꼈습니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와 연출님의 디테일한 감각을 보며 이 작품, 제대로 나올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공연을 본 지인들도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연극을 봤다면 다들 엄지 척을 했습니다. 배우님들과 최용훈 연출님께 감사드리며 저 역시 더 좋은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며 함께 호흡을 맞춘 극단 작은신화에 무한한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극단 작은신화의 최용훈 연출가는 최소한의 소도구와 신선한 작품 해석뿐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서로 잘 이해하고 화합하며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공연 내내 극도의 집중된 에너지를 뿜어내게 만들어 주었다. 거의 빈 무대처럼 느껴지는 무대 위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들조차 허투루 놓인 것이 없다. 그리고 배우들의 시선과 조명의 방향과 밝기까지 관객들의 심리 변화를 예측하며 미세하게 조절된다. 본 공연 이전 무대 설치 후 조명과 동선을 맞추는 테크리허설과 드레스와 분장을 맞춘 후 더욱 미세하게 연출의 방향을 맞추는 드레스리허설 동안 쉬는 시간조차 없음에도 누구 하나 열외 없이 모두가 작업에 집중하는 뜨거운 열기에 극단 작은신화의 무게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방문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역시 또 다른 문제가 연쇄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작품 “믿을지 모르겠지만”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계속해서 무대에서 이어지는 괴로움은 우리 삶과 진배없다. 그렇기에 지난 7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 이후 한 달여 만에 더욱 단단해져 돌아온 이번 작품은 연극적인 연극만이 무대에서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감동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창작극과 신진작가 발굴을 위한 극단 작은신화의 격년제 프로젝트인 ‘우리연극만들기’는 1993년 시작되어 이를 통해 조광화, 오은희, 고선웅, 오세혁, 최치언, 박찬규, 김민정, 김원, 양수근, 김연재 등 현재 한국 희곡 계의 중추적 작가들의 데뷔 또는 대학로 데뷔를 이끈 한국연극계의 대표적인 창작극 개발 및 작가 등용 프로젝트이다. 올해 김이율 작가의 대학로 데뷔를 훌륭하게 이끌어준 ‘우리연극만들기’가 계속해서 창작극과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주며 탄탄하게 대학로를 계속해서 받쳐주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