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인간 본연의 감정이 직접적이라면 그 세계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무엇을 가져오게 될까? ‘피카소 훔치기’, ‘리얼 게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 윌리엄 미주리 다운스(William Missouri Downs)의 작품 ‘리얼 게임’은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을 실제로 경험한 작가가 미국에 돌아가 트럼프가 당선된 현실을 보며 가짜뉴스의 날조된 현실을 진짜라 믿는 이들을 통해 거짓 현실을 풍자한 바 있다. 자신의 희곡을 (굳이 정의내린다면) ‘익살스러운 사실주의’라고 말하는 그는 삶은 연극평론가들이나 교수들이 정의내린다고 되는 게 아니기에 장르적 구분은 다 조작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로 바라본 현대사회 풍자극으로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안겨준 작품 “퇴직면접”은 연극과 겸임교수의 퇴직면접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젠더, 사회, 환경, 인생에 대한 소재들을 희화적 옴니버스로 그려냄으로써 음모론과 과장된 광고 속에 표류한 현대인의 모습을 희화시켰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인 듯 같은 이야기인 듯 오버랩되며 이어지는 장면 구성과 해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환기하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뭘 놓치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회 속 개인의 모습을 탐구하는 극단 ‘사개탐사’와 시대와 인간상을 적나라하고 섬세하게 분석하는 연출 박혜선의 색채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 “퇴직면접”은 미국 작가의 희곡 “The Exit Interview”를 국내 상황에 맞춰 박혜선 연출가가 시의적절하게 각색하였다. “원작자 윌리엄 미조리 다운스가 자유로운 각색을 허락해주셔서 큰 구조와 메인 드라마, 엔딩 장면만 빼고 거의 다 각색했죠. 영상, 음악, 기타 효과 모두 연출의 아이디어로 재조립되었어요. 이렇게 서로 신뢰하는 창작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나서 제가 운이 좋았죠”라고 말할 만큼 박혜선 각색 겸 연출가는 한국적 정서에 맞춰 친절한 풍자극으로 변모한 “퇴직면접”으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소외 효과(Verfremdung Effekte)’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고안한 극작 기법으로 소외 효과의 목적은 객관적 세계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관객이 극을 볼 때 거기에 감정적으로 휩쓸려 버리면 안 되며 항상 새롭고도 낯선 태도를 갖게 하여 극적 환영을 깨뜨림으로써 무대 위의 사건에 더욱 깊은 인식과 비판의 여유를 가지게 만들어 줌을 이른다. 이는 무대가 실재적이지 않고, 무대 위 인물들이 극 중 인물들과 동일하지 않음의 인식에서 시작된다.
무대 위 인물들이 실제 인물이라고 인식하고 감정을 따라감이 익숙한 관객들에게 의도적으로 그 감정선을 끊는 행위는 꽤 불편한 감정을 안길 수도 있다. '관객'이라는 입장을 확인받는 경험, 사회 윤리적인 측면에 대한 직접적 긴장감 유도는 어쩌면 우리와 동떨어진 낯선 이국의 방식만은 아니다. 노자, 공자가 말하는 ‘중용’이나 ‘중도’에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라는 이야기와 ‘소외 효과’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 순간부터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전체를 볼 수 없음을 이야기할 뿐일는지 모른다.
아래는 “우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라며 “대의명분과 이윤이 오가는 정치, 경제, 사회현상, 내 가족과 나 자신까지. 이 공연이 여러분에게도 그런 거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관객들에게 전한 박혜선 연출과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어쩌면 구태의연할 수 있음에도 생명력 물씬 느껴지는 무대는 신구의 조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이나 연차 등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하는 연출님이기에 가능한 듯 싶습니다. 이제 자신의 경험을 열심히 쌓고 있는 배우들이기에 보일 수 있을 들뜸과 설렘이 느껴지는 열정이 연출님의 정리정돈이 보태지며 또 다른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준비과정 중 있었을 에피소드들이 더 궁금해집니다.
젊은 친구들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저와 비슷해야 각색 방향이나 연출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사회문제에 대해 몇 주에 걸쳐 토론했습니다. 나를 자극하는 문제, 내가 자극하는 문제. 혐오, 분노, 폭력, 정경유착, 언론의 비양심, 지구온난화, 과대광고, 반려동물 학대 등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 속에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저도 배우들도 주변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거죠. 저 또한 요즘 세대를 이해하는 방향성을 찾았습니다.
연출님의 작품들은 명쾌한 해답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꼬임 없이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준비과정은 지난하고, 아쉽더라도 무대 위에 못 풀어낸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작품을 올리며 아쉽지만 못 올라갔지만 하고 싶었던 장면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시의성이 중요한 작품이다 보니 공연 때마다 현재의 이슈를 담아내느라 자료 조사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풍자보다는 신랄한 과장을 선택했습니다. 어차피 소외 효과라는 장치가 있어서 좀 심한 장난이나 대사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연극적 정치'로 이해될 수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좀 대놓고 '연극'을 한 거죠.
그래서 아쉬운 장면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또 흘러 몇 가지 다른 사회적 이슈가 절 자극해서, 다음 공연 기회가 생긴다면 쓰려고 메모장에 저장해뒀습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차기작 소식이 궁금합니다.
단원들과 '체홉 그림자 밟기'라는 타이틀로 체홉 속 인물들로 창작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신화와 현실'이라는 타이틀로 신화 속 캐릭터와 역사 속 사건을 소재로 공동창작도 하고 있습니다. 총 7편의 단막극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12월 1일부터 5일까지 나온씨어터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내년 초엔 개인적으로 댄스뮤지컬을 의뢰받아 연출합니다. 요즘 스트릿 댄스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데, 저도 흥미롭게 공부 중입니다.
‘그래도 연극은 계속된다’라는 슬로건 하에 2017년 시작된 이후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1번출구 연극제’는 젊은 연극인과 중견 연극인이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대중적 발전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시작된 연극제로 올해는 더욱 알찬 구성으로 돌아왔다. 독특하면서도 친근한 소재의 작품들이 선발되어 눈길을 끈 이번 연극제는 ‘다양한’, ‘대중적인’이라는 기존 흐름을 이어 어렵다고만 느껴지는 소극장 연극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고, 참가작들이 극단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아 장기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발판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 작품 "퇴직면접"에 이어 극단 산의 “어느 날 갑자기”, 극단 광대모둠의 "서울맨숀', 극단 주다의 “그린을 기다리며”, 극단 명장의 “눈 오는 봄날”까지 4편의 다양한 색을 가진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