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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속의 신선함, 연극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문화

익숙함 속의 신선함, 연극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권애진 기자 marianne7005@gmail.com 입력 2021/10/07 23:59 수정 2021.10.08 12:10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사진=Aejin Kwoun)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 테베 시민이 되어 테베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슈들을 바라보고 극장 안에서 준비된 SNS 채팅방을 통해서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이야기 속에 참여하였다. /(사진=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 윤리 문제인 ‘스몰 브라더’를 조명하는 작품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가 극단 키르코스만의 개성과 기발함으로 고전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게 해 주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5일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펼쳐진 이번 작품의 각색 및 연출뿐 아니라 배우로 출연까지 팔색조 매력을 보여준 최호영 연출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사진=배경훈)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_제약회사의 대표가 납치되고 그를 찍은 영상이 온라인으로 배포된다. 그리고 조금 늦게 대통령은 영상을 통해 기이한 요구사항을 전달받는다. 영국드라마 '블랙 미러'를 봤던 관객이라면 수상과 돼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진행되는 스토리에 오히려 당황하기까지 했다.  /(사진=배경훈)

‘스몰 브라더’란 ‘빅 브라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다수 시민에 의해 감시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번 작품은 원작에서 오이디푸스가 ‘대중 여론에 의해서 왕이 되고 폭로로 인해서 하루아침에 파멸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 ‘스몰 브라더’ 현상을 무대 위에 구현하였다. '스몰 브라더 사회'에서 시민은 감시받는 존재가 된다. 이 현장은 단지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오늘날 온라인 곳곳에서는 자신들의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이로인해 쌓아왔던 모든 걸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사진=배경훈)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 SNS를 통해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니터 너면을 공연 중 직접 영상을 찍는다. 촬영 그리고 개성 가득한 납치범의 목소리를 연기한 그는 작품의 각색과 연출을 한 최호영 연출이다. /(사진=배경훈)

지난 대선에서 여론의 힘입어 테베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이디푸스는 사상 초유의 전염병으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자국 제약회사에 전폭적인 지원을 거듭한 끝에 세계 최초 백신 및 치료제 생산을 확정을 짓지만, 다음 날 아침 신원을 알 수 없는 테러리스트가 대통령을 지목하며 기이한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과연 테베의 대통령 오이디푸스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테베를 지켜낼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사진=배경훈)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온라인상의 저격, 좌표찍기, 화력지원을 통해서 온라인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스몰 브라더들의 도덕적 심판이 자행되고 있고, 이는 도를 넘어선 악플, 인격살인으로 번진다. /(사진=배경훈)

온갖 매체들에서 봤거나 봤음 직한 장면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장면들의 이어짐과 이야기의 진행은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향한 내달림조차 ‘SNL코리아’가 순간 떠올려질 만큼 오히려 유쾌하다. 하지만 사실 익숙한 구시대적일 수 있는 자극적이고 강한 표현들이 웃음을 유발할지는 몰라도 절대로 유쾌할 수만은 없다.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사진=배경훈)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 그녀의 잘못된 선택은...누구의 탓일까? /(사진=배경훈)

익숙한 드라마나 영화들에서 가장 강한 자극을 주었던 장면들이 작품 속에서 이어짐을 보며 자극적이고 쎈 것에 놀람이란 반응보다 익숙함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인식은 정상적인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짜고 매운 것을 자주 먹을수록 더욱더 자극적인 맛을 원하는 우리의 혀처럼 현대인의 뇌 또한 자극과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로 병원에서도 함부로 투여하지 않는 모르핀 진정효과의 200배 달하는 효능을 가진 중독성 강한 천연진통제인 엔도르핀(Endogenous morphin(내인성 모르핀), Endorphins)을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원할 정도로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사진=배경훈)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 공연사진 | 눈을 찌르는 행위는 세상을 보지 않기 위해서인가 그저 테러범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함일까 /(사진=배경훈)

아래는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최호영 연출과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연극무대에서 '패러디'가 이런 식으로 쓰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대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은 이 형식을 사용하며 어떤 치열한 고민이 있었을지 듣고 싶습니다.

연극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는 초기 구상 당시 ’오이디푸스가 유튜브라면?‘이라는 상상으로 출발한 작품이었습니다. 작품 소개 글에도 적혀있듯 소포클레스의 원작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왕이 되고 논란으로 인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는 모습을 통해서 현대 사회에서 공인·인플루언서·유튜버의 모습을 포착했고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현대 시대로 가져와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20년도 지원사업을 받은 연극 ’순환의 법칙‘이 코로나로 인해서 올해로 미뤄져 6월 전까지 상연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마찬가지로 작년부터 연습을 진행하고 1월에 상연 예정이었던 두산아트랩 연극 ’카르타고‘가 연습 도중에 코로나로 인해서 공연이 7월로 밀리는 상황이 겹치면서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정말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약 2개월 안에 작품 각색과 동시에 연습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지원사업을 통해서 진행되는 작업이라 처음 지원서에 적어서 낸 요소들을 모두 책임지려 하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애로사항 때문에 작품이 가진 한계를 더 넘어서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연출적으로 투머치한 구성이 되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작품이 나름 괜찮은 형태로 갖춰져서 추후에 기회가 있다면 이런 부분들을 수정, 보완하여 재공연을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각색 과정에서 총 3가지 방향의 대본이 나왔고 극장 들어가기 일주일 전쯤에 현재의 대본으로 가는 것으로 픽스가 되었습니다. 원래의 프로덕션 순서는 작품이 먼저 존재하고 그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옳은 순서지만 이 작품은 컨셉으로만 존재했던 작품이라서 창작과정에서 함께 부대끼며 고민하고 연출을 믿고 따라와 줄 수 있는 배우분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짧고 부족한 프로덕션 상황에서 연출의 결정을 믿고 따라와 준 배우와 창작진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희곡 ’오이디푸스 왕‘의 서사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거의 모든 비극의 원류 같은 느낌이라서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의 서사를 어떻게 뻔하지 않게 풀어낼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같은 결말이지만 다르게 풀어내려고 노력했고 작품의 핵심 소재인 SNS의 특성을 고려해서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클리셰 같은 것들을 더 과감하게 차용해서 패러디적인 요소로 차용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 ’더 테러 라이브‘, 미드 ’지정생존자‘, 영드 ’블랙 미러’와 같은 작품들에서 몇몇 장면을 참고하여서 대놓고 차용을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SNS에서 소비하는 또는 소비하게 되는 콘텐츠들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쎈 방식으로 소비, 생산되는 것처럼 기존의 익숙한 클리셰는 진부하지만, 관객들이 단시간에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가져오면서 왕을 대통령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현대 사회의 정치판의 모습을 투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치적인 주장이 아니고 'SNS가 우리 삶에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요소가 자칫 작품을 어떤 정치적인 주장을 내포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극 중 등장하는 사건 및 이슈들에 대한 유튜버들의 영상 내용도 찬성과 반대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극단비밀기지와 극단키르코스가 서로의 장점들을 최대한 끌어내 주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가, 연출과 배우까지 소화하는 이들 중 응원하고 싶은 몇 안 되는 이들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그리고 세 가지 역할을 하면서도 구멍이 느껴지지 않도록 어떤 점을 가장 유의하면서 작업을 할지 궁금합니다.

제가 소속된 극단 키르코스는 작년을 기준으로 프로젝트 단위로 전환하면서 저를 제외한다면 저희 팀은 유민경 배우와 장정아 작가밖에 없는 상황이라 연출로써 구상하는 작품에 추가로 배우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이전에도 교류가 많이 있었던 극단 비밀기지의 젊은 단원들을 중심으로 협업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극단 비밀기지는 젊은 창작자들로 이루어진 극단이라 창작자들 특유의 젊은 열정과 재기발랄함이 있는 극단이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창작 작업을 할 때 참여하는 배우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오이디푸스 왕‘ 같은 작품은 주요 배역이 아니면 코러스가 중심인 작품이라 특히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운 작품에 속합니다. 그래서 각색과 연출 구성을 통해서 모든 참여 배우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이번 작품을 통해서 함께하는 배우들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하나의 주제로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배우분들 또한 연출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점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연출이 먼저 조사, 연구했던 자료들을 함께 공유하고 다시 조사, 연구하면서 배우들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공연을 올린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차기작 소식이 듣고 싶습니다.

현재까지 확정된 차기작은 올해 초부터 극단 비밀기지 신진호 연출과 함께 준비한 해외 신작 희곡이 하나 있는데 12월에 이 작품을 소개하는 쇼케이스에 배우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여러 작업이 뒤로 밀리면서 올 한 해 동안 몰아치듯 작업을 이어왔는데요. 연말에 잡힌 쇼케이스를 마치면 잠시 숨을 고르면서 다음 작품에 대해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연출로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해외희곡작품으로 이슬람 테러리즘과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를 함께 만든 사람들_알버트 외(이현석), 오대수 외(조보우), 이옥희 외(안현정), 무대감독(정지훈), 연출(최호영), 고래원 외(김태윤), 노영호 외(김준광), 향보살 외(이지윤), 조연출(김성혁), 음향오퍼(장혜원), 조명오퍼(최윤서) /(사진=Aejin Kwoun)
"오이디푸스 온 더 튜브"를 함께 만든 사람들_알버트 외(이현석), 오대수 외(조보우), 이옥희 외(안현정), 무대감독(정지훈), 연출(최호영), 고래원 외(김태윤), 노영호 외(김준광), 향보살 외(이지윤), 조연출(김성혁), 음향오퍼(장혜원), 조명오퍼(최윤서) /(사진=Aejin Kwoun)

신선한 시도가 뻔하거나 예측 가능한 시도가 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다. 이번 작품은 고전에 동시대성을 부여하며 SNS를 이용하며, 클리셰를 애매하게 비틀기보다 그대로 가져와 이야기를 끌어가 관객들이 익숙함 속에서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오히려 더 궁금하게 만들어 주는 극단 키르코스의 이번 작품은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스토리를 경험하게 해 줄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너무 ‘새로움’이라는 것에 사로잡히지는 않기를 소망하며 12월의 작품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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