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뉴스프리존]박유제 기자=지난 7월 25일, 경북 문경에서 산책 중이던 60대와 40대 모녀가 목줄이 풀린 대형견 6마리에게 물어뜯겨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가 있었다. 1주일쯤 뒤인 8월 3일, 경찰은 대형견 견주를 중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5월 25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길 가던 60대 여성이 마을을 떠돌던 대형견에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견주로 지목된 인근 개 농장 주인을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한 뒤 지난 8월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아침 산책길, 느닷없는 진돗개 습격
이처럼 반려견 또는 유기견 등에 의해 개 물림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경남 창원시 사림동 주택가에서도 이보다 앞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60대 남성 A씨는 지난 2019년 5월 9일 오전 6시30분경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서 아침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인근 주택에서 갑자기 진돗개 한 마리가 뛰쳐나와 자신의 우측 다리를 물었다.
당황한 A씨는 개를 밀치면서 피했지만, 중대형견인 진돗개가 수 차례 자신의 다리 두 곳을 물고 늘어져 약 3~6㎝의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의 진돗개는 인근 주택에 사는 40대 B씨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키우던 것으로, 사고 당시 목줄이 풀려 있었고, 출입문도 열려 있어 순간적으로 A씨를 습격한 사실이 확인됐다.
결국 창원지방법원 호성호 판사는 반려견에 입마개와 목줄을 하지 않아 사고를 유발한 혐의(과실치상)로 재판에 넘겨진 B씨에게 그해 10월, 벌금 30만원을 약식명령했다.
견주 책임회피에 손해배상 청구
견주에 대한 과실치상 혐의가 인정된 뒤 A씨는 B씨에게 연락해 자신이 사고를 당한 뒤 치료를 받은 병원 진료비와 위자료 등 변상을 요구했지만, B씨는 A씨의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책임을 회피했다고 한다.
외부적인 상처는 치료 후 아물었지만 하퇴부 통증이 계속되는데다, 생전 처음 개의 공격을 받은 A씨는 개만 보면 멀찌감치 돌아갈 정도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B씨는 자신의 진돗개가 상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뒤에도 B씨로부터 진정어린 사과 한 마디 받지 못하자 이에 격분한 A씨는 지난해 7월 B씨를 상대로 치료비와 약제비, 성형수술비, 위자료 등을 합쳐 599만5195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개에 물렸으니 당연히 합당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던 A씨는 그러나 변호사 선임을 통해 대응했던 B씨에게 일부 패소했다.
창원지법 김초하 판사는 지난해 9월, B씨가 A씨에게 위자료 70만 원을 포함해 총 169만5195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일을 하지 못한 손해배상이나 성형수술비 등 나머지 청구는 기각시켰다.
전체 손해배상 청구에서 일부 기각판결이 나면서 A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손해배상은커녕 소송비용 중 2/3을 부담해야 했지만, 법원 판결을 존중해 항소하지 않았다.
견주의 불복...항소심 "74만원만 배상하라"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B씨가 법원 판결에 불복해 변호사를 선임한 뒤 항소한 것이다.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며 월급 200만 원을 받는 A씨는 변호사 선임을 엄두도 내지 못한 반면, B씨는 변호사를 통해 본격적인 재판에 임했다.
창원지법(재판장 서경원 판사)는 지난 9월 16일 제1심 판결 중 일부 초과 금액을 취소하고 'B씨는 A씨에게 74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견주인 B씨는 주의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A씨가 개에 물리는 상해를 입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면서도 치료기간 월급을 받지 못했거나 성형수술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였다.
결과적으로 진돗개에 목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문까지 열어놓았던 견주 B씨는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개물림 사고로 깊은 흉터에 '트라우마'까지 겪고 있는 A씨에게 치료비 및 약제비 4만원과 위자료 70만원 등을 합쳐 총 74만 원만 배상하면 된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 진돗개는 아직도 목줄 없이..."
치료기간 월급이나 기타 약제비 및 성형수술비에 대한 판단은 근거가 있었겠지만, 다른 재판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배상규모가 적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지점이 여기다.
지난해 11월, 같은 창원지법 형사3단독 조현욱 판사는 물림 사고를 유발한 혐의(과실치상)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견주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조 판사는 당시 “반려견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입마개를 채우거나 목줄을 잘 잡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이 사고로 피해자가 개에 정강이를 물려 2주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판시 이유를 밝혔다.
똑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단순 비교하자면 벌금에서부터 20만 원 차이가 나는데다, A씨처럼 정강이를 물린 피해자의 경우 2주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A씨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과는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가뜩이나 중대형견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반려견에 대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견주에게 이런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진다면 제2, 제3의 사고를 예방하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그는 2일 오전에 B씨의 집을 지나면서 자신을 습격한 진돗개가 여전히 목줄을 하지 않은 채 마당에 앉아 있는 사진을 촬영해 <뉴스프리존>에 제보했다.
A씨는 이어 "B씨나 이번 항소심을 결정한 재판관이 개에 물렸거나 유사한 봉변을 당해도 이 정도의 손해배상이 합당하다고 판단하겠느냐"면서 "개한테 물리고도 성형치료를 못받고 재판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이 사법정의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