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인간이 동물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는지를 탐구하고, 인간의 시선으로 재단된 것이 아닌 동물 본연의 모습을 무대 위에 재현하고 있는 독특한 색채의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동물의 소수자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아내 온 구자혜 연출은 인간과 가까운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생존권을 빼앗기는 상황을 일체의 과장 없이 무대 위에 객관화시키며 관객과 동물들이 만나게 해 주고 있다.
죽은 동물을 인터뷰하기 위해 일상을 벗어나 타국으로 떠나온 A. 동물을 만나기 전 적당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고,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쇼핑하고, 멋진 풍광을 감상한다. ‘로드킬’을 ’씨어터’에서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들어서는 관객의 마음가짐과도 닮았다. 비로소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A는 죽은 동물의 감정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14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번 작품은 동물에게 인간의 시선으로 씌워지는 ‘피해자의 전형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실체 그대로의 동물을 바라보고 있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동물의 시각을 빌어 ‘대상화’를 이야기는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올림픽 성화 봉송을 위해 소집되었다가 인간의 실수로 불에 타 죽어야 했던 비둘기,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우주선에 태워 쏘아 올려진 러시아의 떠돌이 개 라이카, 독립을 위해 길을 떠나다가 자동차에 치인 고라니 등 인간의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도 있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재 진행형인 일화들도 있다.
11명의 출연 배우들에게는 고정된 배역이 거의 없다. 어떤 장면에서는 사람으로, 어떤 장면에서는 동물로 등장하여 관객이 동물과 사람 사이의 관념적 경계부터 허물게 한다. 2019년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수상한 성수연 배우, 2021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을 받은 최순진 배우를 비롯하여, ‘킬링타임’,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등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활발히 활동 중인 이리 배우, ‘고도를 기다리며,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등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관객과의 접점을 넓혀 온 백우람 배우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배우들이 합류하여 인간과 동물의 오가는 전위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시작 초반 익숙하지 않은 묘사들과 음성들로 생경한 느낌은 무대 위 배우들의 열정 어린 연기를 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그들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고 있다.
동시대 문제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방식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문과 회의로부터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는 구자혜 연출은 “명동예술극장은 극장의 역사뿐만 아니라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이미지와 프로시니엄 무대 형태로 만들어지는 극장성이 있어요. 그게 극장이 가진 힘이겠죠. 그러한 극장성에 갇히거나 주눅 들지 않고 열한 명의 배우분들과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고 싶어요.”라며 공연 그 자체를 즐기는 배우들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누구나 평등하게 누리는 연극의 가치’라는 국립극단 기치에 걸맞게 전 회차 수어통역, 음성해설, 한글자막 등의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무대 위에는 2명의 수어통역사가 올라가며, 상단에 한글자막이 송출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대의 생김새나 배우의 동작 등 시각정보를 설명하는 개방형 음성해설도 진행되고 있다.
시각정보를 설명하는 것이 구태의연하게 느껴지거나, 입 모양으로 발음을 읽을 수 있게 끊어 말하거나 무대 위에 자막과 통역사가 등장하는 것은 이제까지 일반적인 공연과 이질적이기에 관객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장애인이 무대 위 공연이나 영상으로 바라보는 매체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였을까? 함께 즐기고 함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익숙하기에 당연한 것은 없고, 불편하기에 틀린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오감으로 즐기는 공연에서 짧은 시간 전달되는 어마무시한 정보들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함께 즐기도록 할지는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숙제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