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그 누구보다 굳건히 나무와도 같이 무대를 지켜온, 연기 인생 50년을 앞둔 배우 윤석화가 고향과도 같은 소극장 산울림의 무대로 돌아와 자신의 첫 산울림 무대 ‘하나를 위한 이중주’, 임영웅 연출과의 첫 작업 ‘목소리’, 장기공연의 신화를 이끌어낸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감동을 재현하는 아카이브 공연 “자화상Ⅰ”의 첫 번째 포문을 열었다. 이번 작품에서 윤석화 배우는 이러한 작품들의 연출, 구성, 출연으로 참여하여 하이라이트를 연기, 노래, 안무 등을 통해 자유롭게 재해석하며 풀어내 본인의 무대 위의 삶을 되돌아보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난 10월 2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이번 작품은 무대 위에서 온 힘을 기울이는 윤석화 배우의 그 불꽃 같은 열기와, 관객과 소통하며 연극에 생기를 불어넣던 그 유쾌한 입담과, 극장을 나선 후에도 전율처럼 남겨지던 그 강렬한 여운. 배우도, 관객도 나이를 먹고 어쩌면 희미한 기억 속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들을, 윤석화 배우는 관객들과 함께 마주 보며 대답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그리웠던 시간을 선물해 주고 있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하여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연극계의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배우 윤석화를 통해 살아 숨 쉬던 그 수많은 인물을, 그와 함께 울고 웃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마주하는 이들도 무대 위 과거 영상에 대한 추억 또는 처음 접하는 모습과 지금 무대 위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연극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톰 켄핀스키의 원작을 윤석화 배우가 번역과 주인공인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파니 역을 맡아 절망과 구원 사이를 오가는 섬세하고 열정적인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가 두드러지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30년 만에 “하나를 위한 이중주”의 스테파니를 새롭고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대에 능숙한 배우조차 긴장하고 주저하게 했던 장 콕토의 1인극 “목소리”는 그와 임영웅 연출과의 산울림 첫 작업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전화기 하나에만 의존한 채 배우 한 명이 오롯이 무대를 감당하며 다양한 표현을 해내야만 한다. 70~80년대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지금에는 조금은 답답하게 여겨질는지 모르지만,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토해내는 그의 절규, 죽음과도 같은 사랑,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 순간의 감정은 관객들의 가슴 속 깊숙이 감춰왔던 순수했던 시절을 상기하게 만들고 있다.
단 한 번의 암전도 없이 90분 동안 무대에서 열연하고 노래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신의 아그네스’ 이후 대중에게 각인된 배우 윤석화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전설적인 공연이었다. 아놀드 웨스커의 원작을 임영웅 연출가가 연출한, 생명과도 같은 딸에게 솔직하게 가감 없이 건네는 어머니의 편지는 모녀지간이기 전에 여자이고 한 사람으로서의 어머니란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커튼콜 인사가 끝난 후, 본공연에서 더해지던 노래와 영국 공연을 위해 준비했던 노래를 들려주는 그의 노래는 여느 가수보다 매끄럽진 않을지 몰라도 배우 특유의 감성 가득한 노래로 관객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고 있다.
1985년 3월 개관하여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연극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소극장 산울림은 35년이 넘도록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좋은 무대만을 고집해오고 있기에, ‘산울림’이라는 이름은 관객들에게 그 자체만으로 믿을 수 있고, 봐야만 하는 공연으로 각인되고 있다. 한편 ‘윤석화 아카이브’는 아카이브Ⅰ-소극장 산울림을 시작으로 하여, Ⅱ, Ⅲ이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