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2019년 공연한 ‘노동가’의 속편으로, 배우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속 노동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품 “노동가Ⅱ-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후 ‘노동가2’)”은 토모즈 팩토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살아있음’에 대한 앤솔로지(anthology, 주제에 따라 한데 모은 작품집)일 것이다.
지난 11월 19일부터 28일까지 나온씨어터에서 총 9회의 공연 동안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끊임없이 뜨고 지는 달과 태양처럼 우리네 고달픈 인생들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 “노동가2”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출을 전공한 일본인 쯔카구치 토모를 중심으로 뭉친 프로젝트 연극 집단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연출가로서 무게보다는 한국을 사랑하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이방인이기도 한 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 내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는 너무 가깝기에 당연하게 느껴졌을지 모를 작은 사건들부터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사건들까지 여린 감성으로 진한 공감을 이어가는 토모 연출이기에 오히려 한 발자국 떨어진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섣불리 사회문제나 해결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목소리를 묵묵히 들어줄 뿐이다.
노동운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부감하고, 그 곤란과 침몰을 표현하려 했던, 여섯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었던 ‘노동가1’에 이어 “노동가2”를 공동창작으로 연출한 토모 연출은 “1편에서는 한국 노동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집성했다면, 이번 공연은 이 시대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노동과 시스템, 일반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어떤 부분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 사회에서 사는 어려움이나 모순을 ‘노동’을 통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에서 2편은 시작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작품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시간 속에서 3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토모 연출 자신의 목소리 또한 들어가 있을는지 모른다.
무대 위에서 굉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곱 명의 노동자가 기계적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언제 끝날지 모를 작업을 묵묵히 이어간다. 그런데 노동하는 손이 문득 멈추는 순간, 그들은 관객 앞에서 자신의 ‘일상’에 대해 ‘노래 없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사사롭고 하찮은 이 역병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 대하여 ‘무언가(無言歌)’를 들려준다.
배우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속 노동의 의미를 돌아보는 이번 작품은 역병의 소용돌이 속 ‘고통’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자, ‘코로나’라는 특수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관객과 배우들의 교류이며 조용한 ‘증언’이기도 하다.
‘노동’의 가치와 지위는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의 가치와 지위를 결정짓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보다는 당장 그 노동의 가치를 주고받는 당사자 간의 문제로만 환산시키고 문제의 근원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산소득을 위시한 불로소득을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 여기며 그들에게 동조하면서 자신의 처지와 굴레를 부모에 덧씌우고 있다.
조용한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관객들의 마음속에서는 자신들의 ‘증언’ 또한 이어진다. 그 증언은 누구에게 왜 들려주려 하는 것일까? 그저 마음의 헛헛함을 해소하기 위한 발화일 뿐일까? 한 명 한 명의 시간이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고 말하는 칼 세이건은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한다. 선과 악의 경계조차 재화가 우선인 듯한 현 사회에서 모두가 소중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으로부터 사람을 대하는 것을 시작한다면, 지금처럼 하락한 노동의 가치 속에서 스러지고 아파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줄어들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