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어둡고 기이하게 뒤틀린 우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폭력의 민낯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 “개미굴”은 그들만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차갑고 비정한 세상을 만들어 낸 어른들에게 직접적인 해결에 대해 질문을 하지도, 해결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어른이 된 현실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선돌극장에서 펼쳐진 동화를 가장한 현실 이야기 “개미굴”은 2021년 창단 25주년을 맞이한 전통과 열정의 극단 연극집단 반의 이가을 배우가 ‘엘렉트라’, ‘페퍼는 나쁘지 않아’로 작가이자 배우인 프로필에 작가, 배우에 연출가로의 획을 성공적으로 추가하며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아이들과 우연히 이들의 집안을 방문한 한 아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이가을 연출가의 목소리를 관객들의 가슴 속으로 하나 가득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은 시대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학대의 수위는 날로 더해 가는 반면 우리는 잠깐 경악하거나 동정하고는 다시 묻어두기를 반복해오고 있다. 세상의 모든 어른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외침이 담긴 작품 “개미굴”의 희곡을 쓰고 연출한 이가을 연출가는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죄책감 혹은 무관심을 꾹꾹 밟으며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끊임없이 죽어 나가는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인 가해자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라 생각했다.
구조적 폭력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학습되고 대물림되며 확장된다. 등장인물들의 평균 연령은 11세다. 그러나 이들이 매일 살아가는 세계의 질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작품을 연출한 이가을 연출가는 “네 아이는 권력에 편승하는 자, 폭력 뒤에 숨는 자, 선한 겉모습과 달리 모순이 가득한 자 등 세상을 살아가는 보편적인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 부디 이 작품을 통해 아동학대의 문제가 단순 기삿거리로 휘발되지 않기를, 폭력의 구조와 양상이 얼마나 일상 속에 만연하게, 다양한 얼굴로, 그리고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입법과 사법의 관점에서 아동학대는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현재는 ‘범죄’로 규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년 만에 전면개정된 아동복지법과 올해 1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사법의 태도는 입법 내용과 간극은 아직도 여전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친권 보호’의 개념으로 경찰들조차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동학대가 의심될 때 누구나 신고 의무가 법제화된 캐나다와 여실히 비교된다. 또한, 아동학대에 대한 엄격한 보호 체계를 갖춘 국가로 평가받는 미국은 CAPTA(아동학대 방지 및 치유법)을 기초로 위험에 처한 모든 아동에 대한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공식적인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정 내 학대나 방임뿐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며 체벌을 하는 행위는 가정 학대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다. 체벌금지법은 ‘아동 체벌 금지를 위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20년 7월 60여 개국이 시행하고 있으며, 올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62번째 나라로 대한민국을 발표한 바 있다.
법규만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 아동의 가정학대를 뿌리를 뽑기는 힘들 것이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부터 노예뿐 아니라 아내, 노인, 자녀에게 체벌이 당연시되었던 스페인은 각 지역 양육지원센터에 상담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전문가의 조언을 담은 홍보물을 모든 가정에 배포하였으며 TV나 상품에 관련 내용을 실으며 부모 교육에 집중한 결과 체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의 비율이 60년대 50%에서 2010년 10% 이하로 떨어진 바 있다.
아이들이 일정 나이까지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대상이라는 사실과 아이들이 미성숙하여 가르침이 필요한 수동적 대상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아동의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닫힌 시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상상력의 나래로 한계가 없이 펼쳐지는 아이들의 세상이 쉽게 지게 하면 안 될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성별, 지역, 계층,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안전한 세상에 살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아이들과 성인들이 법 앞에서 차별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빨리 세상을 경험한 어른들은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갈 의무를 지켜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