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 밀레니엄을 앞둔 시절 인류에게 주어진 일종의 묵시적 성향을 지닌 당시 파격적인 내용으로 드라마, 영화 및 각종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끌어내며 수많은 상을 받았던 “엔젤스 인 아메리카”가 2021년 코비드 19로 많은 이들이 힘겨운 시절 대한민국의 관객들과 마주하고 있다. 미국의 극작가 토니 커쉬너(Tony Kushner)의 대표작인 이번 작품은 1991년 초연 시 퓰리처상,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을 포함하여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 PART Ⅰ과 PART Ⅱ로 구성된 작품을 합치면 장장 8시간에 이르는 대작으로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성애, 인종, 종교, 정치, 환경 등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작품이 쓰인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한국 공연의 연출은 ‘와이프’, ‘그을린 사랑’ 등 감각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들로 주목받아온 신유청 연출이 맡았다.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26일까지 한 달간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PART Ⅰ:밀레니엄이 다가온다”는 뉴욕을 배경으로 에이즈에 걸린 프라이어와 그의 동성 연인 루이스, 몰몬교로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괴로워하는 남자 조와 약물에 중독된 그의 아내 하퍼, 극우 보수주의자이며 권력에 집착하는 악명 높은 변호사 로이 등 세 가지 이야기가 축을 이루며 교차한다.
벽을 부수며 나타나는 천사의 이미지가 강렬했던 드라마의 기억이 아스라이 남아있는, 연극으로는 장대한 작품을 무대 위에 펼쳐내고 있는 신유청 연출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분열이 초래된 이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난 사회의 문제들보다 내면의 죄의식, 양심 등과 같은 보편적인 것에 집중했다고 전하며, “(이 작품의 범위가)구약에서 신약까지 내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을 제가 신비한 체험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성서라는 완벽한 턴테이블 위에 1980년대의 미국의 시대 상황을, ‘엔젤스 인 아메리카’라는 LP판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그 연주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작품을 접하며 느꼈던 점을 조심스럽게 묘사하였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한 이번 작품은 그가 느끼고 행동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 그리고 예술가의 책임을 녹아내며 은유나 생략보다는 과감하게 직설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또한,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이자 타자들이 충돌하면서 조화를 찾아가는 서사의 보편성에 의미를 두어 작품을 선택한 국립극단과 ‘사람’에서 연극의 의미를 찾으며 작업해 온 신유청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내년 2월부터 “파트 투:페레스트로이카(러시아어로 ‘개혁’을 의미)”를 이어서 선보이며, 같은 기간 파트 원도 함께 공연할 예정으로 2003년 마이클 니콜스의 드라마로 HBO에서 방영되었던 작품과 마찬가지로 배우 대부분이 일인다역을 소화하며 PART Ⅰ, Ⅱ를 합하면 8시간에 달하는 공연을 끌어갈 배우들은 주변의 걱정과는 달리 너무나 즐겁게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다.
아프리카 콩코에 살던 침팬지의 SIV(유인원 면역결핍 바이러스)가 원숭이 식용, 백신주사기의 재사용, 냉장 혈장의 매혈 등으로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하기 시작했던 HIV는 오랜 기간을 거쳐 미국과 유럽 등지로 퍼져나갔고 혈액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혈우병 환자, 동성애자, 마약 중독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발병 사례가 보고되었다. 그리고 이후 HIV 유전체의 계통유전학적 분석에서 가장 흔한 균주의 발원이 전부 다 아이티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과학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많은 이들이 바이러스전파의 근원은 생각지도 않은 채 감염에 취약했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을 뿐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꾸준히 치료하면 당뇨병과 같이 조절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전환되었으며, 2010년 12월에는 완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에이즈를 불치병으로 여기고, 동성애에 대한 죄악으로 여기던 1980년대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영국의 팝 듀오 펫샵 보이즈가 1987년에 발표한 동명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러셀 T.데이비스의 드라마 ‘잇츠 어 신(it’s a Sin)’에서 느꼈던 80년대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다름을 인정하지 않던 사회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코로나 시국에서 많은 감염자가 나오고 있고, 취약한 이들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현재 감염에 취약한 이들을 도덕적으로 불온하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공격할 수 있을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로 우리 사회의 보편을 이야기하며 혐오와 편견에 저항하는 이번 작품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물음은 절대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