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만난 총신대 강사 강호숙(49)씨는 광야에 홀로 선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은 여성 목사도 여성 장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여성 전도사가 있지만 임시직이라고 교단 헌법은 못박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강씨는 여성 지도자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 왔다.
총신대가 공개 석상에서 여성 목사 안수가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신학자를 강의에서 배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자리에 배석한 또 다른 신학자의 여성학 강의는 개강을 앞두고 돌연 폐지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해당 학자는 “여성 인권 탄압”이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학교 측은 “전임교원이 늘어 일부 강사의 강의가 축소됐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14일 학교 내 세미나실에서 열린 총신대 신학대학원 여동문 송년회 자리다. 설교를 맡기로 한 김영우 총장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을 대표해 기도에 나선 P 박사는 “평등과 자유와 사랑이 넘쳐야 할 교회와 교단에서 오히려 차별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여성 사역자들이 많이 있다”며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오니 속히 이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서도 여성들에게 안수가 이뤄지게 하여주옵소서”하고 빌었다.
그런데 바로 이어 마이크 앞에 선 김 총장은 “여성 안수 반대는 개혁신학의 보루”라며 “여성 안수는 안 된다”고 선을 그어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총신대를 운영하는 예장 합동 교단은 소위 개혁신학을 추구하면서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 등의 문구를 근거로 여성에게 목회자 안수를 금지하고 있다.
이날 이후 개강을 앞두고 P 박사가 맡아 온 구약 수업은 다른 학자로 강의자가 대체됐다. 같이 송년모임에 참석했던 강호숙 박사는 7년째 맡아 온 이 대학의 유일한 여성학 교양강의와 평생교육원 여성학 강좌가 폐지됐다. 강 박사의 또 다른 신학 강의도 담당자가 다른 교수로 대체됐다.
강 박사는 “기도를 한 신학자 P 박사와 제가 일방적 통보로 강사직을 박탈당한 상태”라며 “강자의 복음, 남자의 복음만 남은 곳에서 누군가는 여성으로 말하고 소리 내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폐강 연락을 받으며 학교 인사로부터 ‘총장이 두 사람을 빼라고 했다’는 발언을 들었다”며 “여성 안수를 언급한 일을 두고 총장이 교수회의 석상에서 노발대발 화를 냈다는 말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기도한 강사를 배제한 것도 황당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만 있던 저를 돌연 내친 것은 여성 탄압”이라며 “평소 교회 내 성차별 근절을 주장하고, 학생들에게 ‘교회에서의 여성 리더십’을 강조해와 ‘여자는 잠잠해야 한다’는 남성 목사, 교수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오직 가부장적인 성경 대목만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여성 차별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믿게 만드는 이런 교단신학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니 성차별적 설교도 황당한 성차별 조치도 계속 나오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가 평소 성차별이 만연한 교단과 교내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박사는 지난달 26일, 이달 2일 두 차례에 걸쳐 학교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고 공개사과와 성차별 철폐를 요구한 상태다. 그는 “더 이상 이런 차별적인 학교에서 강의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더 강의할 생각도 없지만 그대신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며 “여학생들을 위해 교회 내의 이런 황당한 성차별에 대한 근본 대책을 요구하며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총신대 관계자는 “2월 말 전임교원 12명을 신규 채용하고 이들 교수의 강의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강의가 조정됐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며 “200~300명 강사 중 총장이 일부 인사를 지목해 배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총신대의 ‘여성 차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임태득 목사는 학부 채플에서 “여성 목사 안수는 택도 없다. 어디 여자가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와”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2014년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과정에 여성 입학을 사실상 차단하기로 했다가 비판이 일자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