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1870~1871년)에서 프랑스가 패한 후, 프로이센 군은 베르사유 궁을 점령하고 파리까지 입성했다. 나폴레옹 3세는 체포되었고, 프랑스 임시정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티에르는 프로이센과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맺으려 했다. 이에 반발해 파리 곳곳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정부군은 민중 시위대를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1871년 3월 18일 새벽 3시. 정부군은 국민방위군(시민군)의 대포를 손에 넣기 위해 기습 작전을 펼쳤다. 시민군은 이에 격렬히 저항했다. 파리는 다시금 혁명의 기운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이날 파리 코뮌의 여명이 밝았다.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자크 타르디 지음, 장 보트랭 원작, 홍세화 옮김, 서해문집 펴냄)은 파리 코뮌을 무대로 한 장 보트랭(Jean Vautrin)의 역사 추리소설 <민중의 함성>을 프랑스의 국민 만화가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가 그래픽노블로 각색한 작품이다. 2004년 전 4권으로 완간된 이 책은 2001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데생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1년 합본된 장정으로 재탄생했다.
책은 파리의 알마 다리에서 의문의 여인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연달아 일어나는 사건의 한가운데서 젊은 코뮌 전사 지케와 릴리가 페르 라셰즈 담을 넘어 사라지는 5월 28일로 막을 내린다. 코뮌의 배경이 된 보불 전쟁, 코뮌 정부와 티에르의 베르사유 정부와의 갈등, '피의 일주일' 동안 이어진 처참한 살육의 광경이 세밀하게 묘사됐다.
책은 역사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나, 역사 속에 숨쉬었던 실존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당대의 혁명가와 저널리스트를 소환해 코뮌으로 일어난 파리가 맞은 해방의 기운, 혁명적 분위기와 함께 넘쳐나는 에너지를 잡아냈다. 덕분에 독자는 보다 생생히 인류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던 파리 코뮌을 이해할 실마리를 얻게 된다. 작가 특유의 아나키스트적이고 민중적 해석이 책에 깊이 녹아있다.
독특한 책의 판형으로도 의외의 보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보통의 그래픽노블과 달리 가로로 길게 늘어진 형태를 가졌는데, 타르디는 이 판형을 이용해 피의 일주일과 같은 거리 전쟁 장면을 광대한 파노라마적 기법으로 그려냈다.
출판사는 광주 민중 항쟁을 기념해 이 책을 펴냈다. 우리말로 번역한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서문에서 "정규 부대에 의해 궤멸될 숙명이 예정된, 민중 전사로 이뤄진 비정규 부대. 이것이 광주 항쟁과 파리 코뮌을 연결하는 열쇳말의 하나일 것"이라며 "벼랑 끝 전망 속에서도 낮에는 토론하고 밤에는 춤을 추었던, 두 달 남짓의 대동(大同) 세상. 하지만 그것은 '피의 일주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일주일이 광주항쟁의 일주일과 그대로 포개지는 것은 역사의 우연" 아니냐는 물음표를 남겼다.
우리에게 광주는 파리 코뮌과 가장 가까운, 민중 민주주의의 저항정신을 기념하는 단어다.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노력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책으로서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은 광주를 되살리는 중요한 작품이다.